도덕적 딜레마, 불신과 배신, 계급차와 인간의 죄책감 같은 여러 인상적인 소재들을 흥미롭게 굴리는 능력이 인상적이었다. 순서가 좀 잘못된 거 같긴 하지만, 아쉬가르 파르하디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영화는 명백히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한정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1부와 다르게 2부의 공간은 계속해서 확장되며, 주인공 또한 곤도에서 2부의 주인공은 사실상 형사 토쿠라로 보인다.
장르의 변주도 인상적이었다. 극초반엔 기업 드라마처럼 보이다가 스릴러로 바뀌더니, 중반 이후부턴 범죄 형사물로 변주되는 흐름이 흥미를 끝까지 붙잡았다.
1부는 사실상 연극처럼 보였다. 또한 후반부에 비해 월등히 좋게 느껴졌다. 1부는 건조한 롱테이크를 섞어가며 실내극으로 이루어진 모든 장면에서 넓고 깊은 구도를 유려하게 보여주었다. 이에 비해 2부는 때때로 산발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다중 플롯의 형태를 띄며 형사물의 이야기를 보여주지만 1부가 나에게 워낙 압도적으로 다가왔던 탓에 다소 심심하게 느껴졌던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식당과 마약굴로 이어지는 시퀀스는 장면 자체로 정말 감탄을 하면서 봤다. 어떻게 이렇게 모든 장면에서 회화적으로 딱 떨어질까. 검거 과정에서 깔리는 오 솔레미오까지, 지금 봐도 너무나 트렌디하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시계에 압류 딱지가 붙어있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은 말이 필요없다.
결말의 범인의 포효 또한, 쉽게 잊을 수 있을까.
여담으로 "꽃을 사기에 적당한 얼굴이 없습니다."에서는 방심하다 지대로 터졌다.
구로사와는 시대극뿐 아니라 현대극도 탁월하게 다룬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아직 남은 <이키루>,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등의 현대극이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