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도에 표지판은 없다.
이 영화를 보면서 타르코프스키를 떠올리는 것은 나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롱숏의 촬영이나 패닝+롱테이크 등에선 유독 그를 떠올리게 되며 영화의 이야기는 <이반의 어린 시절>의 설정과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서사를 합친 결과물처럼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의 방식을 이렇게 변주해 재창조하는 결과물들엔 항상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페인티드 버드>에는 우리가 전쟁영화에서 '보고 싶지 않은' 장면들이 가득하다. 21세기엔 분명 애용되진 않는 흑백의 무채색 화면이 영화의 뼈대이며, 일일이 나열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충격적인 장면들이 영화에 가득 들어 있다. 흑백은 이 영화에서 효과적으로 기능한다.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특정한 어느 지역의 정서가 아닌, 이름 없는 한 지옥도 그 자체의 풍경이었을 것이다. 총천연색의 색감으로 공간을 파악하고 시간을 파악하는 우리의 접근법은 이 영화에서 무력화된다.
영화에선 (대부분의) 군인들의 행동은 선으로 읽히는 반면 민간인들의 행동은 악한 본성을 여실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전쟁의 혈흔이 채 마르지도 않은 이곳에 선악의 경계가 과연 있는 것일까. 여과 없는 장면들을 통해 우리는 전쟁이라는 비극이 인간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말을 바꿔보자면 다수의 전쟁영화에선 우리가 '보고 싶은' 장면들이 다수 들어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블록버스터의 스펙터클은 시각적, 청각적 쾌감을 간편히 전달해 주며 주인공의 여정은 정형적인 영웅서사의 왕도로 땜질된다. 많은 전쟁영화가 이미 오락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밖에 기능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영화 역시 지옥도의 풍경을 다루고자 하는 의도임에도, 간헐적으로 그 자극적인 이미지 자체에 대한 집착성이 느껴져 조금은 갸웃했던 것이 내 솔직한 감상이다. 그럼에도 누구나 도전해 보고 싶지만 아무나 시도해 볼 수 없는 방식의 영화를 기어이 성공해 낸 감독의 대담성을 난 높게 평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