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그레인, 올드한 오프닝 타이틀 롤. 관객을 타임머신에 태워 1970년대로 보내는 듯한 <바튼 아카데미>는 '바튼 아카데미'라는 공간을 통해 한 겹의 레이어를 더 만든다. 인물들의 (거의) 모든 일은 바튼 아카데미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바튼 아카데미 밖에서의 모든 행적 역시 (엔딩을 제외하고선) 말하자면 바튼 아카데미에 종속되어 있다. 세 주인공은 과거에 갖혀 있는 인물들이다. 메리는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아들을 잃었고 아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학교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앵거스는 친아버지와 관련한 과거의 아픔으로 인해 한켠으론 미성숙한 학생이다. 폴 역시 과거의 아픈 기억이 현재까지도 본인을 짓누르고 있다.
세 주인공은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바튼 아카데미>는 탈출의 영화다. 구조적으로도 그렇고 이야기적으로도 그렇다. 한겨울 넓은 건물에 고립된 이들, 설정으로만 보면 <샤이닝>이 떠오른다. 세 주인공은 의도치 않은 만남을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는 동시에 자신의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가족이 없는 그들에게 이 시간은, 드디어 찾아온 혹은 처음으로 찾아온 진정한 가족을 만나는 시간이다.
인물들 간 티격태격하는 모먼트들도 사랑스럽고, 슬랩스틱 같은 장면들도 웃음의 타율이 높다. 세 주인공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폴 지아마티는 경력 최고의 연기였다. 이보다 더 뛰어난 연기를 그의 남은 경력에서 선보일 수 있을까. 그는 오스카를 받았어야 했다. 수상자인 킬리언 머피 그 또한 경력 최고의 연기를 <오펜하이머>에서 보여주었지만, 나의 주관으론 이번 오스카는 폴 지아마티의 것이었어야 했다.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는 본작에서 단 한 순간도 불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낯선 배우였던 도미닉 세사는 소년의 성장을 카메라에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배우였다.
착한 영화는 흔하다. 착하고 좋은 영화는 흔치 않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바튼 아카데미>는 등장인물들을 따스하게 감싸는 시선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나이브하게 그러한 '착한 영화'에서 멈추지 않고, 세상사를 포착하는 냉정한 시선과 현실의 스산함을 함께 더했다. 좋은 영화는 세상을 구하는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고 했다. 좋은 영화는 무책임한 해피엔딩을 제공하지 않는다.
"현실에선 너의 이력이 너의 운명을 결정할 필요가 없단다" 라며 털리에게 조언하는 폴의 대사가 잊혀지지 않겠다. 앞으로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를 영화 리스트에 한 편이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