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을 다룬 영화를 좋아한다. <지구 최후의 밤>이나 <멀홀랜드 드라이브>, <매트릭스>나 <거울> 같이 꿈이라는 소재를 통해 영상을 만들어내는 영화는 매번 놀라운 영화적인 체험을 하게 해 준다. 그 중에서도 <산딸기>는 가장 환상적이면서도 가장 모범적인 방식으로 꿈이라는 수단을 영화에 결합해냈다.
영화는 총 4번의 꿈 시퀀스를 보여준다. 첫 번째 꿈은 흑백의 콘트라스트를 강렬하게 입힌 만큼 초현실적이고 괴기스럽다. 악몽이라는 형태의 전형성을 보여주는 이 시퀀스는 주인공 이삭의 내면의 불안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짐작하게 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두 번째 꿈은 산딸기라는 소재를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데 현재의 모습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화면이 인상적이다. 과거의 인물들은 이삭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는 환상적인 설정이며 이삭은 시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하는데 이 순간 굉장히 놀라운 연출력이다.
이후 만난 '사라'라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소녀를 통해 이삭은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고 반추하게 된다. 여담으로 주인공이 사랑했던 여자의 이름은 '사라'이며 주인공의 이름은 '이삭'인데, 성경에서 사라와 이삭의 관계는 모자 관계이며 극 중 동생만을 언급하는 어머니를 대하는 이삭의 태도를 볼 때면 묘하게 오이디푸스적인 모티브도 느껴지는데, 나의 감상만 그런 것이었는지 궁금하다.
이삭은 아흔이 넘은 어머니를 찾아간다. 그녀는 이삭 자신과 같이 무정하고 냉혹한 사람이다. 언제나 외롭다는 그녀의 말을 통해 이삭은 죽음이라는 순간을 감각하게 된다. 세 번째 꿈은 주인공의 트라우마와 죄의식이 응집되어 나타난 형태인데, 첫사랑을 잃었으며 의사라는 본업에 있어 무력해지고 아내에게 고소를 당하며, 아내의 불륜을 방관했던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게 된다.
자신과 동행한 며느리를 통해 아들의 처지를 듣게 된 이삭은 명예 학위를 받은 이후 가정부와 아들을 통해 진심어린 반성을 하게 된다. 네 번째 꿈은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이며 아름다운 순간이자 일평생을 살아온 노인이 가장 순수한 순간으로 돌아가는 부모와의 재회라는 마법으로 그려진다.
<산딸기>는 반 세기가 훌쩍 넘은 지금에 이르러도 놀랍도록 모던한 영화이다. 더욱이 이 영화가 얼마나 많은 감독들에게 영향을 미쳤는지는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현실과 과거를 교직하는 방식에선 <애니 홀> 등의 우디 앨런의 영화들이 떠오르며 꿈을 다루는 질감과 엔딩 장면은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이 떠오르곤 한다.
<시네마 천국>의 주인공 토토는 직업적으론 성공했지만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순수를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통해 회복하게 되었다. 나는 이 영화만큼 삶과 순수에 대해 진중한 태도를 보여준 영화를 본 적이 거의 없다. 나에겐 훗날 나이가 든 뒤 몇 번이고 다시금 떠오를 마법같은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