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체가 거대하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호불호와 별개로, 그런 영화들이 있다. <대부>가 그랬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나에게는 그랬는데
이 영화에서도 그런 감정을 느꼈다.
장면에서 주는 감정의 격랑이 거대해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교도의 축제일 시퀀스, 타타르 족의 침입 시퀀스를 보면
여타의 설명 없이 장면 그 자체로도 압도적인 감정을 전달해 준다. 전자는 미지에서 발생하는 기묘한 두려움이 있는 한편, 후자는 예상할 수 없었던 압도적인 스케일에 꽤나 놀라곤 했다.
가끔 타르코프스키(이하 탈콥)는 '기술자'로 느껴지진 않는다. 영화적 테크닉의 활용을 안하는건지 못하는건진 모르겠지만, 막말로 탈콥의 영화에선 데이빗 핀처의 화려한 편집이 없고 웨스 앤더슨의 인공적인 건축미도 없다.
하지만 탈콥에게는 진정성이 있다. 탈콥은 회한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순수한 예술을 지향하는, 어찌 보면 현대의 시선으로 봤을 때 미련하다고 느낄 만큼 비타협적인 순교자의 발걸음으로 예술을 만든다.
혹자는 이런 태도가 지나치다고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에 이런 예술을 하는 예술가도 있었다는 것은 분명 우리가 기억해야 할 자산일 것이고
탈콥은 분명 그러한 길의 최전선에 있었다 생각한다.
(이동진 평론가님도 언급하셨지만, 우리나라에선 이러한 예술을 하는 자는 이창동이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현역 감독 중 탈콥과 꽤나 비슷한 면이 있다고 느껴지는 알폰소 쿠아론의 영화를 보면 주제의 신성을 전달하는 과정 속에서 테크닉의 화려함에 취해 주제를 잊어버리고 '기술적 성취'에 대한 감탄으로만 머무르는 느낌을 받곤 했다. 물론 이는 순전히 개인적인 감상이다. (특히나 칠오맨, 그래비티에서 종종 느꼈다. 개인적으로 로마는 달랐다. 로마는 졸라 걸작이다.)
꽤나 추상적인 오프닝 시퀀스를 굳이 굳이 이해해보자면 이카로스의 모티브와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늘을 나려는 인간의 욕망은 결국 땅에 떨어진다.
영화 전체는 폭력, 욕망, 질투 등이 발현되는 사건을 보여주며 인간의 본성을 끊임없이 응시한다.
오프닝 시퀀스는 불완전한 인간의 비극을 함축한다.
(아마도...!)
영화를 예술가 영화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창동 감독의 <시>가 떠올랐다. <시>의 주인공 미자는 아름다운 것에서 시상을 떠올리던 인물에서 낮은 곳을 내려다보며 시를 완성하는 인물이 되었다.
안드레이는 젊은 시절 탁월한 기술자였으나, 세상의 낮은 곳 속에서의 인생의 수난을 겪고 난 뒤 진심의 신성을 담아 예술을 완성했다.
예수는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신성은 가장 낮은 곳에서 완성되었다.
개인적으로 타타르 침공 시퀀스 이후엔 다소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후 '침묵' 파트가 이어져 더 그렇게 생각한 거일 수도 있겠지만) 이전 장면들은 흔히 말해 '천의무봉'의 경지였다면 이후 장면들은 그보단 약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내게는 생각되었다.
종 시퀀스는 탈콥이 힘을 너무 많이 준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고....뭐 그렇다.
어쨌든 종 시퀀스를 이야기해보고 싶다. 아이는 생명의 위협과 아버지로부터 제조 기술을 배우지 못함에서 비롯된 불안 속에서 종을 완성한다. 누구에겐 위엄의 표식이지만 누군가에겐 예술의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더이상 세상을 부정하고 회피할 수만은 없다. 안드레이는 자신의 달란트를 완성하기로 결심한다.
이후 이어지는 컬러의 성삼위일체는 오랜 시간 안드레이의 수난을 지켜본 우리에게 선사하는 선물과도 같이 보인다. 예상된 아름다움의 결과물이지만
어느 누구도 감동을 받지 않기 어려운
그 자체로 아름다운 영화적 순간이다.
이제 탈콥의 영화를 제대로 보는 것은 처음이고 그의 필모 중 두 번째 영화에 불과하지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그는 분명 영화라는 예술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도 깊은 지점까지 도달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