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 대신 음악과 리듬을 좋아하는 빌리 엘리어트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일지도 모른다. 탄광의 일을 하는 아버지와 형. 시위가 넘쳐나는 시대. 마초이즘이 현현한 수십년 전 런던은 곡선보다는 직선의 둔중함이 어울리는 시대였을 것이다.
예술가 영화+성장 영화라면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있을까. <빌리 엘리어트>의 소재는 발레, 예술이지만 이 영화는 예술을 이룩하는 과정보단 주인공이자 한 예술가의 성장에 많은 포커스를 두고 있다. 상처는 때론 예술가에게 필연적인 것처럼도 보인다. 돌아가신 어머니, 폭력적인 아버지와 형,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 고난은 주인공을 성장하게 하며 또한 상처를 잊는 힘을 예술에게서 받았을 테다. 빌리가 면접에 합격한 뒤에도 영화는 빌리와 그의 지인들이 헤어지는 이별의 순간들을 집중한다. 이 영화는 성장영화다.
또한 이 영화는 결국 백조같은 영화다. 물 위를 우아하게 거니는 백조의 모습 아랜 목숨을 걸고 물장구를 치는 모습이 숨겨져 있다. 아들을 위해 파업을 그만두고 일터로 복귀할 때 '배신자'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의 섬뜩함과, 파업이 실패하고 모든 노동자들이 다시 탄광으로 내려갈 때의 처연함이 글을 쓰는 지금도 생생하다. 빌리의 밑에 재키가 있었다.
폭력적인 시위 중이나 가정에서의 싸움 중에서도 이 영화에는 무언가 낙관적인 기운이 흐른다. 아이의 시선 속일 이 미성숙한 세상 속에서 주인공 빌리가 선보이는 춤 장면들은 더없이 인상적이다.
편집점들은 러프하고 숏에는 꾸밈이 느껴지지 않는다. 장면 장면에서 예술적인 야심이 느껴지진 않지만 대신 진정성이 느껴진다. <빌리 엘리어트>에는 가장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