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 에이전트>는 두 개의 주안점이 있다. 장르와 주제. 영화의 주인공 마르셀루는 어머니에 대한 흔적을 찾으러, 그리고 아들을 만나러 고향에 당도하고, 그의 과거로 인해 그는 고용된 킬러들에게 쫓긴다. 분명 이 이야기의 메인은 마르셀루의 가족 찾기이지만 그래서 느슨하게 추격전의 형태를 띠기도 하는 본작이다. 이에 더해 혼란스러웠던 시대상을 훌륭히 표현해 그야말로 몰입력이 대단한데 '상어가 삼킨 누군가의 다리'는 그 자체로 스릴러로서 기능하기도 하며 이로 인한 불편한 진실을 은폐하려는 검은 세력들의 면모를 응시하는 사회 영화로서 기능하기도 한다.
장르적으론 역시 <바쿠라우>의 감독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답다. 긴 러닝타임 동안 내내 흥미로웠다 말하기는 어려웠겠지만, 타란티노를 연상케 하듯 서스펜스를 풀었다 조였다 하는 능수능란한 감독의 능력은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로치 부자와 마르셀루 부부의 씬은 이 감독의 인장처럼 느껴지는, 마치 끓는점에 도달한 물을 지켜보는 듯한 조마조마함이 담겨 있으며, 특히나 영화의 후반부 '킬러의 시퀀스'는 볼거리에 있어 분명한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긴 시간 동안 느릿하고도 강렬한 서스펜스, 그 끝에 당도하면 등장하는 폭발적인 비주얼들까지, 이쯤이면 그를 '사회파 타란티노'와 같은 말로 수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영화에는 매우 거친 접합이 있다. 영화의 시작부터 1977년이라는 특정 시대를 분명히 언급하고, 파트로 나누기도 할 만큼 이 영화는 '그 시대'로 돌아가는데 큰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분명히 목도하는 것은, 이야기의 중간중간 분명히 현대의 시점이자 언뜻 이제까지의 이야기와 강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장면이 삽입되어 등장한다는 것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아메리카>의 유려한 시점 변화와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이렇게 관객의 몰입을 깰 만큼 등장하는 것이라면 그만큼 중요한 것일 테다. 삽입된 현대의 장면은 젊은 두 명의 여성이 그 시기의 녹음된 테이프들을 들으며 내용을 분석하는 장면이다. <시크릿 에이전트>는 재현 그 자체보다, 재현을 통해 계속해서 잊지 않고 이어가려는 무언가에 대한 영화다. 그 무언가는 이제는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으며 이제껏 숱한 방해로 은폐되고 알려지지 않은 '어두운 진실'일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녹음을 듣던 이 중 한 명 '플라비아'는 영화의 주인공 마르셀루의 아들이자 중심 이야기에도 아이로 등장했던 페르난다에게 (녹음본들을 회수하라는 외부의 압력이 있었음에도 복사본을 만들어서까지) 자료들을 전달한다. 1977년 당시 마르셀루가 찾고자 했지만 결국 완성되지 못했던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흔적들과, 아직도 누군가는 은폐하고 싶은 그때의 진실들을 밝힐 수 있는 자료들을.
과거의 기억 (혹은 상처)는 이제는 남겨진 자들에겐 잊고 싶은 기억이자, 혹은 기억도 나지 않는 기억일 수도 있겠으며, 기억하려 하면 고통스러운 것들이다. 그러나 피로 엮여진 자가 아닐지라도 (그래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것에 관심을 둘 합리적인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그것에 관심을 두고 잊지 않으며 진실을 밝히려는 어떤 제3자들이 우연히 존재하기에 지나온 시간을 (비록 드문드문일지라도) 우리는 간신히 잊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