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 '터틀' 체포 문서를 타이핑하던 중 타자기에 파리 한 마리가 앉아 이름이 '버틀'로 잘못 찍히고, 이 사소한 오류로 엉뚱한 사람이 체포되면서 모든 비극이 시작된다. 이처럼 작은 실수 하나가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 것이 본작의 공식적인 줄거리다. 하지만 영화가 더욱 집중하는 것은 시민을 철저히 통제하면서도 정작 어설픈 실수를 연발하는, 고도로 발전한 듯 보이는 정부 시스템에 대한 풍자다. 정보 검색부의 사소한 실수를 파악하지 못한 채 정부는 고고하고 근엄한 태도로 일관하며 '터틀' 체포 작전을 밀어붙이고, 우스꽝스러운 노동부 듀오는 "우리 사전에 실수는 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내비친다.
이러한 풍자는 시스템 아래 살아가는 시민들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고급 레스토랑처럼 보이는 식당에서 라우리 어머니와 친구들이 만나 식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메뉴판 사진과 달리 내용물은 색깔만 다를 뿐 조악하고 동일한 형태의 저질 음식들뿐이다. 요즘 말로 '썸네일 사기'와 다름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불평하지 않는다. 그들의 목적은 음식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번지르르한 공간에서 사치를 누리고 있다는 만족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분업화와 관료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성은 실종된 듯 보인다. 식사 중인 공간에 불이 나도 자신이 속한 부서의 일이 아니기에 신경 쓰지 않는 라우리의 무심함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그의 태도를 통해 비단 그만의 생각이 아님을 짐작게 한다. 채도 낮은 화면을 통해 이러한 사회상은 효과적으로 전달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삭막함을 느끼게 한다. 프레임 속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은 마치 '기계의 색'처럼 차갑고 비인간적인 빛깔을 띤다. 여기에 과장을 위한 로우앵글, 광각 렌즈, 클로즈업은 그로테스크함을 더하며 과잉의 미학을 보여준다. 라우리를 좁은 공간에 수많은 사람과 함께 배치해 폐쇄감을 강조하는가 하면, 정보 검색부로 이직했을 때는 넓은 공간에 극소수의 인물만 배치하여 정반대의 공허감을 효과적으로 조성한다. 이처럼 새로운 공간이 등장할 때마다 직관적인 정서를 전달하는 미술적 역량이 대단하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인상적이다. 특히 로버트 드 니로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누들스를 연기한 지 불과 1년 만에, 정반대 성격의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저항적인 배관공 해리 터틀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놀라움을 안겨준다.
영화 후반부, 거대하고 고요한 공간에 갇힌 라우리가 터틀의 도움으로 구출되어 달아나는 시퀀스는 매우 몽환적이고도 화려하다. 마법처럼 사라진 터틀을 뒤로하고 예상치 못한 공간들을 거쳐 마침내 질을 만나 낙원으로 향하는 듯하지만, 이 모든 것이 라우리의 꿈임이 밝혀지는 결말은 엄청난 충격을 선사한다. 누구도 손쓸 수 없는 상태로 넋이 나간 라우리를 홀로 남겨둔 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마지막 장면은 블랙 코미디로 일관하던 영화의 분위기를 단숨에 섬뜩하고 서늘하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브라질>은 타자기 위 파리 한 마리가 일으킨 사소한 오류가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과정을 그리면서, 극단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관료주의 사회의 비인간성과 허술함을 통렬하게 풍자한다. 독창적인 미장센은 이러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며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보기 드문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경직된 시스템 속에서 서로 최소한의 책임만 지려는 사회와 달리, 사랑이라는 비효율적인 가치를 위해 상대방의 모든 것을 책임지려는 주인공 샘 라우리의 낭만적인 몸부림은 그래서 더욱 안타깝게 다가오며, 시스템이 개인의 꿈과 희망마저 허락하지 않는 현실을 처참하게 보여주며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