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셰린의 밴시The Banshees of Inisherin

2022 · 마틴 맥도나 · 영국, 미국
🏆 골든글로브 작품상🏆 베니스 남우주연상후보 · 아카데미 작품상
이니셰린의 밴시 포스터
114분 · 드라마 · 코미디 · 15세 이상 · 출연 콜린 파렐, 브렌던 글리슨, 케리 콘돈, 배리 키오건 · 음악 카터 버웰 · 촬영 벤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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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외딴 섬마을 이니셰린. 주민 모두가 인정하는 절친 파우릭과 콜름은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 정도로 다정하고 돈독한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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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 세계의 사회학

<이니셰린의 밴시>에서 우리를 가장 먼저 사로잡는 것은 인간의 얼굴이 아닌 대지의 얼굴이다. 땅의 어느 곳에 있더라도 가까이 혹은 멀리에서 바다가 주민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바다보다 더 먼 곳, 지평선 너머의 '본토'에서는 그들의 가까운 민족들이 생사를 다투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영화는 이 거대한 세계를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섬을 보여준다. 사방이 바다로 막혀 있으면서도 그 안의 대지는 이상할 만큼 탁 트여 있고, 모르는 사이가 없을 정도로 적은 수의 주민들이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며 살아간다.

그래서 이니셰린이라는 공간은 특별하다. 숨을 곳이 없는 섬에서는 서로의 습관을 아는 것이 자연스럽다. 누가 몇 시에 어디로 가는지, 누구와 함께 펍에 오는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지를 금세 알아차린다. 사면이 막힌 공간에서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면서 동시에 필수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사방이 막힌 곳에서 적을 만든다는 것은 나에게도 위험한 일이다. 좋든 싫든 매일같이 마주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막힌 곳에서 누군가의 관계에 균열이 발생한다는 것은 단순히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섬 전체의 질서를 뒤흔드는 하나의 비상사태에 가깝다.

오늘의 주인공이자 이 섬의 비상사태를 만들어낸 인물은 파우릭과 콜름이다. 영화는 둘이 얼마나 오래 친구였는지를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콜름과 함께 오지 않고 홀로 펍에 온 파우릭을 보고 펍의 사장이 자연스럽게 둘이 싸운 것이냐고 묻는 장면만으로도 그들의 관계가 얼마나 당연한 것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둘은 늘 함께 펍에 찾아오는 듀오였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콜름은 파우릭을 밀어낸다. 이유는 황당할 정도로 단순하다. 그냥 더 이상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콜름은 타인과의 사회생활 자체를 끊지는 않는다. 펍의 사장과는 여전히 웃고 떠들고, 정기적인 연주회에도 참석한다. 그가 끊고자 하는 것은 사회와의 관계가 아니라 오직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파우릭과의 관계다. 인간이길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이 냉정한 판단을 당혹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파우릭뿐만 아니라 관객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든 이유를 찾으려 한다. 콜름이 무엇 때문에 기분이 상한 것인지, 혹은 무엇 때문에 갑자기 파우릭을 견딜 수 없게 되었는지를.

콜름은 이내 자신의 이유를 밝힌다.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더 이상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남은 인생에서 더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파우릭과 나누는 한심한 잡담을 더 이상 견딜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물론 우리는 그의 말을 예술적 성취에 대한 욕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자신이 남길 음악을 위해 시간을 아끼려는 예술가의 결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면 정말로 그저 파우릭과의 잡담이 지겨워진 것일 수도 있다. '그냥'일 수도 있다.

이 지점에서 파우릭과 콜름의 갈등은 흥미로워진다. 콜름은 무의미함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는 자이고, 파우릭은 이유 없음을 견디지 못하는 자다. 무의미한 것만을 나누면서도 만남이 지속될 수 있는 관계는 어쩌면 친구가 유일할 것이다. 부모와 자식은 양육이라는 목적 아래 묶이고, 선생과 제자는 교육이라는 테마로 이어지며, 일터의 동료들은 어떠한 프로젝트의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 나아간다. 그러나 친구는 특별한 목적 없이도 함께 있을 수 있다. 친구란 어쩌면 무의미한 것들을 함께 나누는 존재다. 별것 아닌 이야기를 하고, 같은 장소에 앉아 있고, 특별한 목적 없이 시간을 소비하는 것 자체가 관계의 내용이 된다.

콜름은 자신의 인생에서 그러한 무목적성의 시간을 통째로 발라내려 한다. 그리고 그 무목적성에 해당하는 존재가 자신의 절친 파우릭이다. 반대로 파우릭에게는 바로 그 무의미한 시간들이 우정의 실체다. 그러므로 콜름이 관계를 끊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두 사람은 서로가 당연하게 여겼던 삶의 전제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콜름은 파우릭이 왜 자신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파우릭은 콜름이 왜 '그냥' 자신을 밀어내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한쪽에게는 이유가 필요 없고, 다른 한쪽에게는 이유가 없다는 사실 자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관계의 단절에서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관계는 둘 이상의 존재가 만나야 비로소 성립한다. 따라서 어떤 관계를 정리하고자 할 때에도 상대방의 마음과 의사가 필연적으로 개입한다. 누군가 스스로를 위해 일방적으로 관계의 단절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 관계가 그 순간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관계를 시작하는 데 둘이 필요하듯 관계를 끝내는 일에도 둘 사이의 교섭이 필요하다. 콜름의 방식이 파우릭에게 당혹스럽고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충분한 소통과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한 사람이 자신의 입장만을 밀어붙인다면, 다른 한 사람의 반발은 필연적이다.

그리고 바로 이 개인적인 관계의 파국 바깥 본토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영화의 공간이 특별한 이유는 이 두 사건이 서로 다른 차원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풍경 안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섬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작은 전쟁과 지평선 너머 본토에서 벌어지는 내전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보인다.

전쟁은 가장 거대한 규모로 확장된 관계의 파국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쪽이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상대방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채 행동하고, 상대방이 그것을 자신의 존재와 유산을 위협하는 일로 받아들이며 맞서는 순간 갈등은 시작된다. 어제까지 친구였던 사람들이 어느 날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것처럼, 파우릭과 콜름 역시 어제까지 서로의 일상이었던 존재를 적으로 돌린다. 관계의 단절이 개인의 삶에서 만들어내는 균열이 전쟁에서는 국가와 공동체의 차원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갈등 그 자체보다도 갈등이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방식이다. 콜름의 잘린 손가락을 먹다가 질식해 죽는 파우릭의 당나귀 제니는 두 사람의 싸움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존재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전쟁은 제니의 죽음까지 끌어들인다. 시오반 역시 두 사람의 관계에서 직접적인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들의 갈등이 만들어낸 세계를 견디지 못하고 섬을 떠난다. 가장 타인과 관계 맺기를 꺼리던 인물이 오히려 관계들의 균열에서 발생하는 참상을 보고 그곳을 떠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오반과 도미닉은 파우릭과 콜름의 성향을 각각 극단으로 밀어붙인 인물처럼 보인다. 도미닉은 타인과 관계 맺는 데 놀라울 만큼 미숙하다. 시오반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그녀의 오빠인 파우릭에게 동생의 알몸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묻고, 시오반에게도 아무런 맥락 없이 추파를 던진다. 그 무례함은 악의보다는 관계를 맺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의 순수함에 가깝다. 반면 시오반은 타인과의 관계 자체를 거부하는 쪽에 가깝다. 그녀는 이 세계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유식한 인물처럼 보인다. 콜름의 지식이 틀렸을 때 그것을 정정할 수 있고, 문제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그러나 타인과 관계를 맺는 일에는 적극적이지 않다. 오빠가 집에만 처박혀 있지 말라고 말할 정도로 그녀는 섬의 관계망 바깥에 서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그 때문에 특별히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고립을 자신의 선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파우릭과 콜름의 비극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몰이해는 둘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은 정말 작은 이유에서 시작될 수도 있고 일순간에 끝날 수도 있는 작업이지만, 그들이 함께 쌓아온 교감의 유산은 그렇게 쉽게 떨쳐낼 수 없다. 사랑의 관계든 우정의 관계든 마찬가지다. 한 사람이 관계의 현재를 끊어버린다고 해서 과거까지 함께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겨진 사람에게는 그 관계의 흔적이 계속해서 현실로 남는다.

그래서 파우릭은 콜름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콜름이 이유를 설명해도 납득하지 못한다. 이유가 납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콜름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내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감행하는데도 파우릭은 그가 왜 이토록까지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콜름 역시 파우릭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에게는 너무나 명확한 결단이 파우릭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가 가진 논리의 내부로 들어가지 못한 채 자신의 논리만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그리고 그 끝에서 시오반이 떠나고, 도미닉이 죽고, 제니가 죽는다.

도미닉의 죽음에는 파우릭과 콜름의 직접적인 책임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의 죽음은 아마 자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파우릭이 복수심에 휩싸여 콜름의 집을 불태우는 동안 도미닉의 시신을 발견하게 만든다. 파우릭은 바로 곁에서 벌어지는 또 하나의 비극을 보지 못한 채 자신의 전쟁에만 몰두하고 있었던 셈이다. 만약 그가 지금껏 자신과 가까이 있었던 도미닉에게 단 한 번이라도 눈길을 돌렸다면, 그의 죽음이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영화는 이 가능성을 직접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편집의 논리 속에 은근하게 남겨둔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이니셰린의 작은 전쟁은 지평선 너머의 전쟁과 다시 만난다. 전쟁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해 어제까지 친구였던 사람에게 총을 겨누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죄 없는 존재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힌다. 오해와 사고와 복수가 겹쳐지면서 갈등은 점점 처음의 이유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커진다. 전쟁이 무서운 것은 누군가가 처음부터 모든 것을 파괴하려고 하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이유를 가지고 한 발씩 내디딘 끝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지평선 너머 본토에서 더 이상 총성이 들리지 않자 콜름은 전쟁이 비로소 끝난 것일까 하고 희망한다. 그러나 파우릭은 냉담하게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순간 두 사람의 성향은 어쩌면 뒤바뀐 것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파우릭이 관계의 회복을 믿었고 콜름이 단절을 확신했다. 이제는 콜름이 평화를 기대하고 파우릭이 갈등의 재발을 확신한다.

그럼에도 둘은 다시 대화를 주고받는다. 사과하고, 감사도 표시한다. 복수심에 극단까지 다다라 상대를 죽이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불태우고서야, 역설적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언뜻 평화가 찾아온다. 하지만 그것을 화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둘은 전쟁을 멈춘 것이지, 전쟁 이전의 관계로 돌아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니셰린의 밴시>의 결말을 단순한 비극이나 희극 어느 한쪽으로 규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파우릭과 콜름은 다시 교류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되기 전의 두 사람, 서로의 하루를 함께 보내고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를 나누던 죽마고우로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 한 번 전쟁을 치른 나라의 두 세력이 다시 총을 내려놓았다고 해서 전쟁 이전의 평화로 완전히 돌아갈 수 없는 것과 같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관계의 표면에는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남는다. 그리고 전쟁이 멈췄다고 해서 다시 시작되지 않으리라는 보장 역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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