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찬 젊은 감독 에드워드는 연극을 연출했으나 관심조차 받지 못한다. 분투 끝에 영화 연출 권한을 따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어처구니 없고 조악한 완성도에 관객과 평단 모두 분노를 숨기지 않는다. 그 스스로도 자신의 재능을 <시민 케인>을 연출한 젊은 천재 오슨 웰스와 비교하며 좌절한다. 우리는 이 예술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아니 그를 예술가로 불러도 민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팀 버튼의 1996년작 <에드 우드>는 역사상 최악의 감독이라 "추앙받는" 에드 우드워드의 생애를 다룬 전기 영화다. 한 사람의 생애를 다루는 전기 영화의 방향성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본작의 이야기로만 본다면 주인공 에드워드는 쉬이 존경하거나 '롤 모델'로 삼기 어려운 인물일 것이다. 야심과 열정은 있지만 내놓는 결과물마다 엉망인 그는 재능은 없고 객기만 가득찬 인물처럼 보인다. 지금보다도 낯설었을 시절, 복장도착이라는 은밀한 취미도 가지고 있다. '끝없는 노력 끝에 걸작을 빚는 주인공'도 아니고, '선했지만 이내 타락해 결국 파멸에 이르는 주인공'도 아니고, '불꽃같이 살다 진 주인공'도 아니다. 그는 매력이 없는 주인공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보며, 거짓 없이 순수하게 꿈을 좇는 그의 열정을 확인할 수 있다. 거듭된 좌절에 힘없이 낙담하면서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실현할 수 있을 기회가 생기면 천진난만할 정도로 이리저리 고군분투한다. 추억의 스타로만 기억되고 이제는 우울증 환자에 마약중독자가 되었지만 카메라 앞에 선 채 연기를 선보일 땐 누구보다 순수하고 열정적인, 그의 친구 루고시 역시 그렇다. 재능이 없다고 진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재능이 없다고 열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그 열정이 바로 재능일지도 모른다.
모든 예술가는 저마다의 이유로 고통받지만 또 모두 비슷한 이유로 고통받는다. 우연히 만난 젊은 재능 오슨 웰스 역시 자신처럼 제작비의 문제로 자신의 이상에 차질이 생기고, 자신처럼 권력자들로 인한 출연 강압이란 일로 신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에드우드에게 말한다. "소신이 있다면 싸울 가치가 있다"라고. 에드는 다시 일터로 돌아가 자신의 소신을 밀어붙인다.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 시사회의 마지막, 극장 밖에서 연인에게 달콤한 고백을 하는 에드를 끝으로 카메라는 시선을 하늘로 올린다. 카메라는 더는 그의 좌절을 박제하지 않으며 더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에드우드>의 에드는 이 영화 이후에도 아마 또 다른 졸작들을 만들 것이다. (실제로 만들었다) 그러나 최소한 <에드우드>에서는 그 사실은 더는 중요하지 않다.
예술가의 최우선 지향점이 자아 실현이라면 그는 아마 최고의 예술가일 것이다. 결과에마저 동감할 수 없겠지만, 거짓없이 꿈을 향해 내달리는 에드의 순수함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