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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의 언어가 뒤섞이고 돈이 지배하는 가상도시, 엔타운. 이름도, 국적도, 과거도 잃은 소녀 아게하는 가수가 되길 꿈꾸는 그리코와 함께 이 낯선 도시에서 살아갈 이유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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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처럼 사라질 지폐들 틈바구니에서도 꿈을 꾸고 희망을 노래한, 90년대 일본의 자화상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이 엔타운이라는 곳이 어떤 공간인지 오프닝으로 요약한다. 노을이 지는 시간, 주황빛 햇빛이 갈대숲을 낭만적으로 비추는 듯 하지만, 그 갈대숲의 한 구석에는 죽은 여성의 시신이 놓여 있다. 엔타운은 도시의 이름이자, 그곳에 꿈을 찾아 모인 외부인들을 일컫는다.
예측이 전혀 되지 않는 정신 나간 작품이다. 미성년 소녀의 성장 영화 같다가도, 괴상한 스릴러의 기운이 감돌다가도 나사 빠진 듯한 코미디로 분위기가 환기되고, 놀랄 정도로 높은 수위의 표현들이 등장하며 갱스터 장르를 띈 플롯이 생성되기도 하며, 위조지폐라는 소재를 가지고 범죄 영화가 진행되다가 음악 영화의 전형적인 흐름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지상의 야장 장면들은 <블레이드 러너>를 떠올릴 만큼의 사이버펑크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한편, 영화의 최후반부는 서부극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일일이 세기도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장르가 섞여 있지만, 감독은 그것들을 굳이 애써 조화시키려 하지 않는 듯 하다. 그저 제각각의 개성을 발산하도록 그것들을 자유롭게 놔 둔다는 인상이다. 부조화 자체가 이 영화의 개성이며, 어쩌면 (엔타운이라는 가상의 도시로 설정했지만) 90년대 일본이라는 공간의 현실을 담은 하나의 다큐멘터리일지도 모르겠다. 버블경제가 붕괴되어, 심각한 경제 불황과 청년 실업률 증가, 도쿄 지하철 테러 사건으로 대변되는 사회 불안, 현실 도피 욕구가 빚어냈을, 역설적이게도 발전한 대중문화까지.
어쩌면 이 영화는 절망의 낙인으로 온통 채워졌을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뚜렷하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본작의 주인공 어린 소녀 아게하의 이야기는 이 영화의 침울한 기류를 일정 부분 상쇄한다. 지나칠 정도로 과묵했던, 어머니를 잃고 사창가로 옮겨진 아게하는 이내 쓰레기를 디깅하는 '사기꾼들'에게로 옮겨지고, 그곳에서 진심으로 자신을 대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지폐를 위조하는 일이 크나큰 범죄라는 의식도 없이 돈을 무한정 찍어 사업을 하기도 하고, 본국으로 강제 소환될 위기에 처한 '페이홍'에게 면회마다 정성스레 도시락을 갖다주기도 한다. 그녀의 행동 역시 '예측 불가능'하지만, 그녀의 행동들을 한 단어로 설명한다면 순수일 것이다.
그러나 순수한 그녀는 기억 저편에 놓여 잊고 있었던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리코와 똑같은 나비 문신을 그리코와 똑같이 가슴에 새기며, 자신의 어머니가 외부의 남자와 관계를 가질 때 홀로 갇혀있기만 해야 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과거에도 그녀는 억압된 존재였고,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있었음에도 그것은 희미했고 아게하는 유년 시절에도 지금과 똑같이 혼자였으며 이방인이었다. 나비는 자신이 갇힌 공간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그녀는 그것에 관심을 가지지만 그녀의 손이 닿자 나비는 죽어버렸다. 그녀에게 자유라는 관념은 사치인 것일까. 그래서 그녀는 이제 체념의 시선으로 그 나비를 자신의 가슴에 새겼는지도 모른다. 자유롭게 살지는 못하지만, 자신에겐 자유의 상징이었던 나비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영화의 엔딩은 희망을 담고 있다. 자신이 만든 수많은 위조지폐를 태워 버린다. 사실을 알 리 없는 아사가와는 사색이 되지만, 아게하는 속시원히 그 가짜를 태워 버린다. 버블과 같이, 가짜와도 같았을 허황이 세상을 집어삼키고, 그 거품이 사라진 뒤 드러난 과거와의 격차를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절망하겠지만, 그 세상에서도 스스로 그 가짜를 훌훌 태워 버리고 새로운 꿈을 꾸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임을 이 영화는 바라고 있다.
이와이 슌지는 음악의 대가다. 극중 등장한 옌 타운 밴드의 음악은 영화를 상징한다. 첫인상으론 다소 튀는 것이 아닌가 싶었던 그리코의 보컬마저, 영화의 세기말 기운 가득한 분위기를 요약한다. 이러한 영화에, 마치 휘트니 휴스턴과 같은 소울 넘치는 강력한 보컬이 개입했다면 되려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흔히 이와이 슌지의 영화를 감성 가득한 영화라고 기억하는데, 그 감성의 영역이 마치 <러브레터>나 <4월 이야기>로 대변되는 아련하고도 순수한 '희'의 감정에만 한정해서 기억하는 건 아닐까 싶다. 이와이 슌지는 희의 감정 뿐 아니라 '비'의 감정마저 탁월하게 다루는 그야말로 (모든) 감정의 스페셜리스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