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을 반기는 <오명>의 첫 테이스트는 분명 '첩보 장르' 스러운 그것이다. 공간과 시점, 분명한 시간을 오프닝에 제시하는 이 영화는 마치 이 이야기가 사뭇 정밀하고 빈트멊는 첩보의 형식으로 펼쳐질 것이라며 예고하고 있는 듯 하다. 실제로 이 영화의 표면적인 내러티브는 브라질 정부와 협력하는 미국의 요원들이 I.G. 파번의 요원을 색출하러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명>에 담긴 것은 단순히 첩보만이 아니다.
<오명>은 로맨틱한 멜로 무비이자, 탁월한 심리 드라마이다. 미국을 옹호했음에도 독일의 스파이 활동을 한 간첩 아버지로 인해 반역자로 낙인 찍힌 여성 후버만과, 프로페셔널한 일처리를 보여주지만 관계를 맺는데 있어선 아이처럼 서툰 남성 데블린의 사랑은 이야기적으로도 심리학적으로도 몰입감이 생긴다.
데블린은 그녀의 배가 보이는 것조차 용납하지 못하며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에 서툰 인물이다. 그렇기에 마음에 없는 가시 돋친 말을 힘껏 가장해 그녀에게 뱉는다. 반면 후버만은 데블린보다 적극적이고 관습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자유로움을 지녔다. 서로에게 아쉬운 것이 눈에 보이기 마련인 듯, 세바스찬에게 스파이로 접근하는 후버만을 두고 애둘러 분노와 질투를 퍼붓는 데블린과 그의 적반하장을 비판하는 후버만의 싸움이 살벌하면서도 흥미롭다.
한편 영화에 등장하는 등장하는 두 주연 남성인 데블린과 세바스찬의 캐릭터는 마치 남성성의 두 가지 모습을 대표하는 듯해 또한 흥미롭다. 흔들리는 감정을 감추려 겉모습을 가장하고 남성성을 과장하는 모습을 내내 보여주는 데블린, 번듯한 외형을 갖췄지만 여성에게는 힘을 쓰지 못하고 (특히 어머니에게) 유아기적 퇴행의 모습을 드러내는 세바스찬. 나약하고 유약한 남성들 대신 극을 이끄는 주인공은 후버만과 세바스찬의 어머니, 두 여성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 지점인 파티 장면에서 와인병의 개수로 서스펜스를 만드는 히치콕의 연출이 놀랍다. 성긴 대사 대신 상황으로 인도하는 카메라의 움직임들 또한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아이러니가 응축된 마지막 장면은 마주할 때 쾌감과 일견 감동까지 드는 거 같다. 이 순간을 위해 모든 서사를 쌓아온 듯한 완벽한 아이러니의 순간이자, 낙인으로 시작해 또다른 자의 낙인으로 끝나는 수미상관을 가진 이야기이다. 히치콕의 치밀함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2022.5.13 2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