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이야기도 '잡지사'의 이야기일 뿐더러 이 영화의 연출적인 컨셉은 잡지의 레이아웃을 모델로 삼은 듯하다. 자유롭게 붙어 있는 자막, 분할된 화면, 엄청난 대사량까지 이 영화는 그야말로 잡지스럽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볼 때면 이 사람은 영화의 연출이 어떤 효과와 정서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통달한 고수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나 이번 <프렌치 디스패치>에선 고정 카메라와 핸드헬드 카메라의 혼용이 얼마나 극적인 순간을 창조하는지 제대로 보여준 하나의 모범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내 기계와 같은 구도의 숏을 반복하다 핸드헬드로 전환되었을 때 그 일순간 터져나오는 강렬한 생동감이란. 또한 흑백의 질감과 컬러의 질감의 차이를 이용한 무드의 조정. 한 씬 안에서도 자유자재로 흑백과 컬러를 넘나들 때 색이 주는 기묘한 해방감까지.
그래서일까. 아니면 이외에도 이 영화가 던지는 실없는 농담 덕분일까. 이런 영화를 숏 바이 숏으로 해체해 분석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작업은 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주 무대인 '블라제'라는 도시는 무법지와 다름없다. 쥐와 고양이가 넘치고, 신성 모독이 판을 치고, 여인숙은 학생들의 집결지가 되었으며 주당 8.25구의 시체가 강에 떠오르고, 밤엔 창녀와 남창들이 가득한 곳이 영화에 등장하는 블라제라는 도시다.
"예술은 어떠해야 한다" 라는 것은 어쩌면 예술의 표현을 방해하는 멘트일지도 모른다. 다만 예술은 지금껏 현실을 미화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져 왔고 현실을 견디게 해 주는 이유가 되곤 했다. <프렌치 디스패치>이 보여주는, 이 북적스런 세상을 어떻게 담아내는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는 예술이 지금껏 복무해온 방향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세상은 바뀌지 않을 테지만, 예술로 세상을 바꿀 순 없을 테지만, 예술은 이 세상을 어떻게 담아낼까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서 치열하게 진행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