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의 시선으로 시골길로 향하는 도로를 구불구불 담는다. 그렇게 도착한 어느 마을엔 빵집의 주인이었던 한 남성이 사망해 있었고, 운전자이자 주인공인 제레미를 아들처럼 대해 주었던 제레미의 전 주인 장 피에르 리갈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장례식 이후에도 원체 제레미를 살갑게 대해준 그 가정이었기에 그는 그곳에 며칠간 더 머물며 10년 만에 찾은 마을을 산책하며 거닌다.
마치 목가적인 어드벤처인 듯했던 영화는 간헐적으로 본색을 드러낸다. 연인의 성적 텐션이 다분히 느껴지는 몸싸움 등 만날 때마다 애증의 감정이 느껴졌던 제레미와 뱅상은 뱅상의 어머니로 인해 심각하게 싸우게 되고, 그 몸싸움이 전과 달리 냉랭해지던 찰나 흥분의 도를 넘어선 제레미는 뱅상을 돌로 쳐죽인다. 이제껏 제레미에 동화되어 그 마을을 탐색하고 관찰하던 관객들은 일순간 당황하며 그에게서 멀어진다.
이후 뱅상의 시신을 묻은 자리에는 지속적으로 곰보버섯이 자라나고, 필리프는 그것들을 캔다. 필리프는 버섯을 마르틴의 집에 가져와 제레미와 함께 요리를 해 먹는다. 목이 메이며 그것들을 삼키는 제레미. 능청스럽게도 식인의 모티프를 슬쩍 집어넣는다. 역시나 고약한 영화 만드는 데 최고라는 알랭 기로디.
사람들은 점점 실종된 뱅상의 진실을 알고 있는 인물로 제레미를 가리키기 시작하며, 결국 경찰들이 개입해 그곳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두 경찰은 제레미를 천천히 옥죄며, 계속되는 취조에 제레미는 자백하기 일보 직전이다. 그때 필리프가 나타나 위기에 처한 제레미를 도와준다. 자신과 있었다고, 자신도 제레미를 원했다고 말하며, 본인의 평판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는 제레미를 감싸준다. 제레미가 자살을 시도하려 할 때 필리프는 그를 만류한다. 죄를 지었지만, 그럼에도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와 함께, 당신이 이렇게 죽는다 하여 뱅상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니, 날 위해 살아달라 말하는 필리프. 이 순간 섬뜩한 의문이 든다. 그는 추기경으로서의 본분 때문에 제레미를 살린 것일까. 아니면 그보다도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린 것일까? 전자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러길 바란다.
마르틴의 집 열쇠를 갖고 있기까지 한 경찰은 새벽에 들이닥쳐 제레미에게 어서 자백하라 말하기까지 하며, 어느 날 제레미는 집에서 나와 그에게서 도망쳐 필리프의 집으로 향한다. 그러자 필리프는 의심을 없애기 위해, 함께 옷을 벗은 채 같이 누워 있기까지 한다. 경찰은 그곳까지 다다르고, 한 이불을 덮고 있는 그들을 보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는 생각에 잠시 주저하지만 그래도 온 김에 확실히 확인해야겠다며 다가간다. 그 순간 필리프의 발기된 성기가 드러나며, 확실히 확인이 되었다는 듯 경찰은 서둘러 떠난다. 경찰의 의심을 완전히 떨쳐냄과 동시에 밝혀지는 진실. 추기경은 사실 동성애자였던 것이다.
잠시 앞의 한 장면을 이야기하고 싶다. 뱅상을 죽인 후 제레미는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한다. 그때 마르틴이 빨래를 돌리러 갑작스레 그 화장실 안으로 들어온다. 마르틴은 나체의 제레미를 별 관심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이며, 당황한 제레미와 (발기되지 않은) 그의 성기에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등장한 장면은 살인의 직후이며, 제레미의 성기이지만 그는 단지 대상일 뿐 그 장면의 주체는 마르틴이다.
둘째 장면은 피신 중이며, 필리프의 성기이고, 장면의 주체 또한 필리프이다. 공통적으로 성기가 등장하는 두 장면이지만, 그것이 (알랭 기로디의 다른 작품들처럼) 성관계로 이어지진 않는다. 분명히 욕망이 점화되는 순간이지만, 그 욕망들은 더 이상 불을 뿜지 않고 소극적으로 억제된다. <미세리코르디아>는 별다른 성적인 장면 없이 욕망으로부터 기인한 긴장감을 보여주며, 더 나아가 시선과 권력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음악도 없는데 섬뜩하다. 음악이 있었던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영화가 빈틈이 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미세리코르디아>는 넓은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상당히 좁은 영화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좁은 영역을 이 영화는 무시무시하게 깊게 돌파한다. (사실상) 아버지였던 장 피에르가 죽고,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듯한 모습의 뱅상. 그 뱅상을 제레미는 죽이고, (사실상) 어머니인 마르틴과 동침하게 되는 오이디푸스 신화의 재해석으로도 읽히는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보다 마일드해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보다 심연의 미묘한 것들을 건드리는 알랭 기로디의 본작은 분명 2025년의 최고작 중 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