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린의 영화 <닥터 지바고>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대서사시'라는 장르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그렇다면 이 장르에 속하는 영화들은 각본을 빼면 무엇이 남는가? 다시 말해, 대서사시 영화는 각본에 종속된 영화일 수밖에 없는가?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미지의 완성도가 중요할 것이다. 이미지가 단지 텍스트의 내용을 보충 설명하는 조연이 아닌, 텍스트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는 '주연'으로 기능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서사시 영화가 가질 수 있는 태생적인 강점은 명확하다. 자연스럽게 영화는 신화적이고도 거대한 스케일을 확보하게 되고, 감정적 격랑을 안정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틀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대서사시 영화의 미덕을 가장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감독은 단연 데이비드 린이다. 물론 <밀회>와 같이 작은 이야기도 만들었지만, 데이비드 린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언제나 긴 러닝타임과 압도적인 영상미를 자랑하는 대서사시 작품들이다.
그중에서도 그는 매치 컷을 활용하여 순간적으로 감정을 고조시키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준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성냥-사막 매치 컷은 아마도 그의 필모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일 것이다. 그런데 본작 <닥터 지바고>에서도 이에 못지않은 아름다운 매치 컷이 등장한다. 차가운 겨울 창문에 낀 서리가, 봄이 왔음을 알리는 꽃의 이미지로 바뀌고, 그 꽃은 다시 라라의 얼굴로 전환된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설명함과 동시에, 감정의 온도를 시적으로 전달하는 이 장면은 대서사시 장르의 미학적 기능을 완벽하게 구현해낸다.
그렇지만 <닥터 지바고>가 완벽한 영화라는 뜻은 아니다. 이 영화는 내레이션을 통해 스토리를 요약하는 방식이 반복되는데, 이로 인해 전체적으로 산문적인 리듬을 형성한다. '세월의 흐름'은 둔탁하게 다가오며, 이미지와 시간의 흐름이 항상 조화롭다고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음'은 이 감독의 무시무시한 무기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사회주의에 대한 묘사다. 물론 사회주의는 실패한 사상이라는 것을 21세기, 그것도 2025년을 사는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역사 속에서 실제로 스러져간 수많은 나라들이 그 증거다. 그러나 본작에서 사회주의의 단점이나 오류를 비판적으로 성찰한 것이 아니라, 단지 사회주의를 따르는 사람들을 악인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라는 매체가 비판의 대상을 이렇게 평면적이고 단선적인 악으로 묘사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선택인가? 너무 나이브한 접근은 아니었을까?
물론 영화가 제작된 시기가 냉전의 한가운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태도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소설과 비교해볼 때, 영화가 보다 이분법적인 접근을 택했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소설은 훨씬 더 복합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쩌면 극적인 긴장감을 끌어내기 위해, 또 로맨스라는 소재를 중심에 놓기 위해, 경중의 조정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