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기 캐리 그랜트의 이미지는 굉장히 특이하고도 독보적인 무엇이 있었다고 생각이 든다. 마냥 선인처럼 보이지도 않고, 또 마냥 악역처럼 보이지도 않으며, 현재는 선인이지만 언제든 악역으로 돌변할 수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렇다고 태어날 때부터 '완전한 악'으로 태어난 인물은 또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는 선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미지. 비슷한 시기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 캐리 그랜트가 보여줬던 모습과 본작 <샤레이드>는 캐리 그랜트의 그러한 이미지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피터 아니 알렉산더 아니 아담 캔필드는 내내 알리바이가 불분명한 인물이며, 때문에 관객은 그에 대한 긴장을 놓칠 수 없다. '공식적으론' 레지나의 조력자인 그이지만 무언가 찝찝한 뒷맛을 남긴다. 한 명의 캐릭터의 스탠스를 치밀하게 축조해 놓는 것만으로도 관객을 쥐고 흔들 수 있다.
스릴러와 코미디는 언뜻 대척점에 놓인 장르처럼 느껴지지만 의외로 둘은 궁합이 괜찮다. 서스펜스를 극한까지 몰고 가다 훅 놓아버리며 위트를 제공하는 콤비네이션은 괜찮은 완성도를 담보한다. 오프닝 시퀀스의 흐름이 그렇지 않은가. 그림 같은 알프스 산에서 식사를 하던 레지나를 몰래 저격하려는 누군가의 실루엣이 단숨에 관객의 긴장을 유도하지만 이내 아이의 장난임이 드러나며 긴장을 일거에 놓아 버리는 코미디로의 전환이 볼 만하다.
<샤레이드>는 스릴러지만, 그렇다고 또 정통 스릴러는 아니다. 내내 긴장감을 가져가기는 하지만, 언뜻언뜻 무심하다시피 한 씬들을 만든다. 선과 악의 대결이라기엔 그들의 만남은 지나치게 잦고, 또 너무 가까이 붙어 있다. 그럼에도 앞서 말했듯 영화는 기어이 끝까지 흥미를 유발하는 데 성공하는데, 역접의 순간이 시의적절하게 붙어 있다는 점이 아마도 본작이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말하지 않았던 진실이 계속해서 나오는 아담 캔필드, 상상치도 못했던 정체로 밝혀지는 해밀턴. 해밀턴을 로우 앵글로 포착할 때의 그 섬뜩함을 나는 잊지 못한다.
흥미로운 것은 악당이 차례로 살해되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수의 악 - 다수의 선에서 다수의 선이 한 명씩 공격당하는 구도가 아닌 정반대의 구도인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아담 캔필드의 소행인지 혹은 알려지지 않은 전혀 다른 누군가의 소행인지의 미스터리가 첨가된 이야기가 흥미롭다. 스릴러 한 컵에 미스터리 한 스푼은 언제나 옳다.
다만 본작을 오드리 헵번의 존재 때문에 찾아 본 나로선 그녀의 존재감이 썩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다. 레지나가 오드리 헵번이었을 이유가 없다고 느꼈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