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초원의 박력이 눈을 사로잡는다. 서부극은 롱 숏과 떨어질 수 없는 사이기에 <파워 오브 도그>의 롱 숏은 너무나 우아한 동시에 절묘하게 어울린다.
성긴 대사로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때론 서사와 동떨어진 듯한 숏과 씬 마저도 정밀하고 계획적으로 직조하여 끝내 연결되고, 인물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형성하며 무드를 생성한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보여주는 엇나간 이단아의 매력은 배우의 능력과 감독의 치밀한 씬의 배치에 있었을 것이다. 티끌을 모아 태산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영화의 예시가 여기에 있다.
필은 남성을 통해 위안과 사랑을 느꼈고, 그가 사라진 이후 동생 조지를 통해 유사한 안정을 느끼는 인물이었다. 로즈의 등장으로 조지를 빼앗긴 그는 평소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는 성향을 한층 부각해 로즈를 몰아붙인다. 바깥으로 폭발할수록 안으론 점점 곪아가는, 내면에 커다란 공허와 아픔이 있는 인물이 바로 주인공 필이다. 게이 자식, '낸시 양' 등으로 불리는 피터는 시대가 바랬던 마초이즘의 남성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로즈의 자식임에도 필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피터에게 다가간다. 필은 근래 본 작품 중 가장 다층적인 인물이다.
드라마와 로맨스가 일차적인 장르로 보이지만, <파워 오브 도그>는 진진한 서스펜스를 통해 영화의 긴장감을 조절한다. 로즈가 피아노를 칠 때의 시점 숏의 사용이나, 칠흑 속에서의 필의 스산한 움직임을 비추는 카메라의 사용에선 제인 캠피언의 기민함에 여러 번 감탄을 했다.
100년이 넘은 영화의 역사 중 남성성의 효시처럼 느껴지는 장르를 하나만 대라면 분명 서부극일 것이다. 그렇기에 제인 캠피언이 본작에서 그려낸 퀴어 서부극의 형태는 생경하지만 새롭고 독창적이다. 이 영화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접하고 영화를 보기 시작할 땐 혹여 이 영화 역시 최근 일련의 흐름인 정치적 올바름의 소재에만 업혀 가는 태만한 방식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혹은 몇 번의 자극적인 이미지를 투사해 선동적인 메시지만을 전파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했었다. 허나 이 영화는 무성적인 뉘앙스를 통해 암시와 은유를 만들었고 간편한 나열로 일관하는 여타의 작품들과는 비교를 불허한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냈다. 21세기에 등장하는 서부극 수작들은 고착된 장르를 비틀고 시대를 반영해 생생하고 젊은 활기가 돋는다.
분명한 올해 최고작 중 하나이자,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 최고작이며, 아마도 21세기에 나온 가장 훌륭한 서부극 중 하나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