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가 그랬고, 스탈린이 그랬다. 당시 소련 사회는 감시와 숙청이 일상화된, 불안과 공포가 지배하는 체제였다. 공연을 녹음하라는 스탈린의 직통 전화에 긴장해 얼음처럼 굳어버리는 안드레예프의 모습, 리액션을 연출하기 위해 지나가던 시민들을 강제로 데려다 앉혀놓는 초반의 장면만 보더라도 이 사회의 비상식적인 형태를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본작은 바로 그 '비상식'을 웃음으로 재현한다. 억압과 공포의 공간인 소련이라는 무대를, 코미디라는 장르로 비틀어낸다. 특히 고위층 인물들이 보여주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들은 이 영화의 주요한 유머 코드이자, 체제에 대한 조롱의 수단이기도 하다. 흐루쇼프나 베리야 같은 인물들이 스탈린 앞에서는 어릿광대처럼 굴며 아양을 떨다가도, 스탈린이 죽자마자 각자의 권력을 위해 재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은 인간의 위선과 체제의 모순을 동시에 드러낸다.
스탈린이 혼수상태에 빠지자, 그를 옮기며 양복에 오줌이 묻을까봐 쩔쩔매는 고위 관료들의 모습은 한심함을 넘어 기괴하다. 의사 한 명을 부르기 위해 '회의'가 필요하고, 유능한 의사들은 이미 다 숙청된 터라 살아남은 의사들마저 공포에 짓눌려 있는 상황은 절망적이면서도 우스꽝스럽다. 생존이 위협받으면 인간은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위악적으로 군다. 이 영화는 그 본능을 냉소적으로 포착한다.
베리야는 제일 먼저 스탈린의 침실에 도착해, 그가 요단강을 건널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조롱을 내뱉고, 권력 찬탈을 위해 군을 움직일 궁리를 한다. 하지만 잠시 스탈린이 정신을 차렸다는 소문이 퍼지자, 곧바로 사색이 되어 얼굴이 굳는 장면은 실소를 자아낸다. 물론 인물들이 모두 영어를 쓴다는 점은 다소 어이없지만, 그조차도 영화의 전반적인 풍자성과 어긋나지 않는다.
영화는 계속해서 '고위층의 우스꽝스러움'을 유머의 동력으로 삼는다. 여러 고위 인사들이 자신이 제일 먼저 차를 타고 나가고자 소란을 피우다가, 스탈린의 관을 실은 트럭이 먼저 지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모두 허겁지겁 다시 내리는 장면은 마치 한 편의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느껴진다. 장례식 도중 스탈린의 차남이 또 난동을 부리며 분위기를 헤집고, 제지당한 채로 침을 뱉었는데 그게 다시 자기 얼굴에 맞는 장면은 폭소를 유도하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영화는 억압적인 체제의 서늘한 잔재를 웃음 속에 숨겨놓는다. 장관이 거주하는 최고급 아파트조차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있고, 변기 물조차 제대로 내려가지 않는다. 바실리의 연설은 비행기 소리에 묻혀버리는 등, 실없는 유머들이 곳곳에 배치된다. 하지만 이 가벼움은 종종 잔혹한 현실과 맞부딪친다. 실각한 베리야가 목숨을 구걸하다 결국 사살당하고, 한 줌의 재로 소각되는 결말은 잔인하고도 공허하다.
그의 죽음은 하나의 점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베리야의 죽음 이후, 사람들의 사진에서 얼굴이 지워지고 낙서되며, 심지어는 아예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모습은 이 체제가 어떻게 기억을 지우는지를 보여준다. 단순히 한 사람의 제거가 아니라, 역사와 흔적을 지우려는 체계적인 말살이 이뤄지는 것이다. 웃음을 유도하면서도, 영화는 끝까지 이 체제가 지닌 섬뜩함을 경시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