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시기의 <신성한 나무의 씨앗>을 연상케 한다. 사회와 정치를 응시하는 태도, 그리고 한 가족의 이야기.
유혈의 폭력적인 장면이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관객을 짓누르고 짓이기는 압박감이 실로 대단하다. 소리치지 않지만 분명 파이바 가족을 감금하는 슈나이더 일행의 모습은 놀랍다. 평화로웠던 공기가 일순간에 경직되는 것을 함께 체험한다. 유니스와 엘리아나를 데려간 후 취조와 독방 감금의 일련의 장면들은 아마도 본작의 가장 뛰어난 순간일 것이다. 평이하게 흘러가던 가족의 일상을 완전히 바꾸어버린다. 몰입감과 폐쇄감을 자아내는 연출만으로, 폭력 없이 옥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일지.
유니스는 엄마로서 싸우고, 아내로서 싸우고, 사회운동가로서 싸웠다. 아버지가 사라진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그들의 집을 감시하는 자들을 맞대응하고, 남편의 흔적과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감금을 당했다 겨우 풀려났음에도) 고군분투하며, 민주화가 된 이후에도 그때의 일을 기억해야 한다며 매체에 얼굴을 보인다.
페르난다 토레스의 연기는 위대한 연기였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된 것이 당연한 처사. 수상을 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명연이었다. <아노라>의 연기보다 더 어려운 연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에는 눈에 띄는 단점이 있는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나에게 강하게 아쉬움을 남겼던 지점은 이 영화에 깃든 필연적인 희의 정서다. 그들은 객관적으로 불편하고 속 타는 삶을 사는데, 이상하게도 영화는 그들이 결국은 행복을 되찾으리란 암시를 계속해서 하는 듯 하다. '1996년'이란 자막과 함께 상파울루의 공간이 비춰질 때 이 영화는 심각하게 시시해진다. 그들이 1970년의 마지막 장면인, 그들이 상파울루로 떠난 즈음의 순간에서 영화가 끝났다면 어땠을까. 1996년과 2014년은 구조적으로 사족이다. 그 사족의 내용이 본작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일 텐데, 그 내용이 시시할 뿐 아니라 '호소'의 역할 그 이상을 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