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인터뷰 녹음을 하려고 한다. 인터뷰이는 그녀보다 나이가 제법 많아 보이는 여자. 둘의 관계는 '작가 지망생'과 '작가'다. 공간에는 음악이 시끄럽게 켜져 있어 녹음을 하는 데 수월하지 못하다. 이 순간 공간의 권력을 점유하고 있는 자는 인터뷰이다. 결국 흐지부지된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가는 인터뷰어. 그리고 작가의 남편이 사망한 사건이 곧이어 벌어진다. 어떤 조짐도 관찰되지 않았고 논리적이지도 못한 이 '시추에이션'을 목격한 우리는 이제 사건의 전말을 밝히러 함께 떠나야 한다.
<추락의 해부>에서 논리는 전진할 수 있을까. <추락의 해부>는 법적 관점으로의 탐구를 수행한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공고한 '갑'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던 산드라는 이제는 완벽하게 '을'의 위치에서 인터뷰와 증언을 하는 실정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어떤 사실을 '함구'한다 하여 그것이 '위증'인 것은 아니며, 점점, 인과로 다져진 사건의 사실보단 그날의 진실이 중요해진다. 하나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감추어 두었던 떠난 자의 치부와도 같은 하나의 사실을 끄집어 올려야 하며, "그렇게 보일 수 있는'가능성'"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법적 공방이라는 것을 그녀와 관객은 받아들여야 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진실과 사실을 구분해야 한다. 진실은 선택된다. 영화의 플래시백으로 관객은 과거의 정보들을 '객관적'으로 습득한다. 그러나 영화 중반, 관객은 법정의 배심원들과 똑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는데, 부부의 다툼이 녹음된 파일을 배심원들이 '들을 때' 관객은 그때의 현장을 '보면서' '듣는다'. 적극적 관찰자로서의 카메라는 관객에게 배심원들보다 심도 있는 정보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을 '폭력이 벌어지는 순간'에 감독인 쥐스틴 트리에는 화면을 돌려 법정의 리액션을 보여준다. 관객은 이 순간 애타고 궁금증 가득한 배심원들과 같은 처지가 된다. "뭐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녹음만을 듣자면 사뮈엘이 죽을 이유도 되고 산드라가 죽일 이유도 된다. 이제 관객은 자신만의 결론을 내리게 된다.
어린 다니엘에게 법적 공방의 시간은 너무나 가혹한 나날이다. 본능적으로 가정을 지키려 애쓰는 다니엘의 모습은 애처롭다. 기어이 본인이 언급되기까지 하는 부모의 싸움이 녹음된 파일을 모두와 들으며, 어머니가 스스로의 외도를 군중 앞에서 고백하는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 검사는 (물론 변호사도) 가정의 이야기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후벼파고 넘겨짚고 왜곡한다. 진실을 밝히는 중인가, 아님 진실을 생성하는 중인가.
진실은 선택될 수 있다는 것은 어린 다니엘에겐 납득하기 어려운 일일 테다. 진실을 선택한다는 것이 믿음을 지어내는 일인 것인가? 마르주는 다니엘에게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결정하는 것이야" 라며 말해준다. 가정을 지키려면 승리가 필요하다. 다니엘은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골랐다.
어느새 무엇이 사실인지는 중요해지지 않았다. 산드라 변호사 측은 승리를 축하한다. 그래서 산드라는 사뮈엘을 죽인 범인이 맞는 거야? 산드라를 제외한다면, 아마도 사실을 알고 있을 존재는 이곳 저곳을 막힘 없이 활보할 수 있었던 유일한 존재인 '스눕'만이 아닐까. 만약 산드라가 범인이라면, 아마도 사실을 알고 있을 스눕에게 엔딩에서 이렇게 말한 것이었을 테다. 함구해 줘서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