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오프닝은 명백한 '초대'의 숏이다. 관객을 이 여정에 초대시키는 숏이란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잭의 초대는 아닐 것 같다. 그 역시 관객과 마찬가지로 초행길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엔딩을 보면 잭이 초행길이었는지는 달리 볼 여지가 있지만 어쨌거나 오프닝에선 그 생각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아예 큐브릭이란 외적인 관찰자의 초대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 내적으로 이것은 오버룩 호텔에 관련되어 산재한 혼령들의 시점이자 그들의 초대로 읽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사실 그 쪽이 맞겠다 싶은 것이, 영화의 카메라는 잭을 멀리서 지켜보다 빠르게 뒤쫓기도 하고, 코앞까지 다다랐다 그냥 그 차를 지나치기도 한다. 마치 인격이 있는 듯한 카메라의 움직임이다.
<샤이닝>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단연 환상적인 스테디캠 트래킹숏이다. 마치 누군가가 쳐다보고 있는 듯한 시점 숏에 더해, 상하좌우의 물리적 공간이 고정되고 여백이 없는 듯한 스테디캠은 말하자면 오버룩 호텔이라는 고립된 공간에 더해 인물들에게 프레임이라는 또 하나의 감옥을 부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샤이닝>의 스테디캠은 '시선'의 암시이자 '감옥'의 중첩으로서도 기능한다.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영화의 공간이 어두워졌다 밝아지면 '하루'가 지났다고 이해하지만 <샤이닝>은 다분히 의도적이게도 (단독 자막을 북마크처럼 넣어가며) '이틀'씩 점프한다. 무의식적인 관객의 이해를 방해하고, 그 사이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를 불안감을 조성한다. 큐브릭은 절대 급하지 않았다. 영화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을 동원하며 관객을 돌이킬 수 없게 옥죄는 것이었다.
<샤이닝>은 아메리카 인디언(흑인)들과 그들을 짓밟은 백인 역사의 암시가 가득하다. 오버룩 호텔에 널려 있는 인디언의 장식들은 물론이고, 과거는 인디언들의 묘지였던 공간이 바로 이 오버룩 호텔이라는 지배인의 언급이 지나가듯 있었고, 환상에 빠진 잭이 바텐더 로이드에게 한 잔을 받으며 하는 언급인 "한 잔씩 해치워주지, 그게 백인의 책무니까."라는 대사는 '열 꼬마 인디언' 노래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이후 또다시 빠진 잭의 환상에서 만나는 '그레이디'는 이 공간을 잭과 자신을 포함한 '백인'들만의 공간으로 여기며 요리사 딕을 'N word'로 칭하며 모욕한다. (물론 이 맥락에서 읽었을 때 영화에 등장하는 유일한 흑인이자 성자처럼 보이는 딕이란 인물이지만, 나체의 흑인 여성 사진이 그의 집 침대 앞 뒤로 걸려 있는 장면에서 읽히는 것은 그 또한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은 적당히 평범하고 적당히 욕망 있는 인물일 뿐인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흥미롭게 기능하는 소품은 단연 거울이다. 거울은 말하자면 한 공간에 형상을 2개 만드는 물건이다. REDRUM이 MURDER로 밝혀지듯 사실과 그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을 분리하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마치 인물이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행동 속내에 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현실에서 보이게 밖으로 끄집어 내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대니를 부르는 잭의 모습은 어쩌면 단순히 자식을 부르는 아버지의 순간이지만 거울에 비춰진 잭의 얼굴은 유독 의미심장하게 무시무시하게 비춰지는 것이 그렇다.
4k가 아닌 것은 아쉬웠지만 아이맥스의 화면을 꽉 채우는 것에서 오는 만족감이 대단했다. 그렇지만 여담으로 광교 아이맥스는 은근히 스크린에 비치는 쉐이커들이 거슬렸다. 자주는 가지 않을 듯 하다.
25.12.12 재감상